또다른 세상 만나기 01

“팀장님, 회사 생활은 원래 이렇게 회의로운 건가요”

입사 3년차. 품격있는(?) 직장생활을 꿈꿨던 나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같은 일만을 반복하는 ‘싸구려’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사실 첫 입사 후 한동안은 꽤 만족스러워 했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또 뭘 잘하는지는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던 탓에, 나 스스로가 내게 주어진 일을 감당할 수 있음에 감사했을 뿐이다.

그런데 업무의 루틴함을 인지할 수 있게 된 순간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한동안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고 싶지도, 일을 벌이고 싶지도 않은 무기력감에 휩싸였다. 이 슬럼프는 어디서 온 것이며, 어떻게 풀어내야 하는 걸까.

직장생활을 통해 몸소 실천했던 격언 중 하나.
‘가만히 있음 중간은 간다’

‘호기심의 부재’

인류학자들은 ‘두려움’이라는 존재로부터 ‘호기심’이 발현되는 것으로 봤다.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대상과 마주할 때 입을 수(도) 있는 피해에 대비하려는 욕구가 호기심으로 나타난다는 거다. 호기심의 원리는 처음 만나는 세상이 두려울 수밖에 없는 갓난아이들을 통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왜?”라는 한 글자만으로도 부모들을 쉽게 지치게 만들 수 있잖은가. 낯선 세상에 대한 의구심, 이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의 운영원리 그리고 타인에 대해 알고자 하는 태도는ㅡ사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더라도 원래부터 우리 모두가 갖고 있던 욕망의 일부인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그런 고민이 있었다.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앞으로의 나의 커리어에, 내가 온전히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생각보다 얼마 안 된다는 위기의식.  그도 그럴 것이ㅡ 마치 호기심을 타락한 것으로 보던 중세시대처럼ㅡ 회사의 절대적인 권위에 도전하고 대표님의 의사결정을 의심해서는 안되는 상황이 많았다. 과하게 표현하자면 하향식 업무, 소통의 부족, 감시 따위로 점철돼 있던 회사생활에서 ‘르네상스’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곤 1도 기대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대표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어지저찌 업무를 처리하고 나면, 성취감보다는 그저 질 낮은 퍼즐 게임이라도 한듯 피로감만 쌓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한 초기 기독교도에게 호기심이란
쾌락, 자만과 함께 세 가지 중죄에 포함되는 악덕이었다.

“기껏 키워놨더니… 아쉽네”

두려움과 긴장감 가득 안고 마주한 생애 첫 퇴사 면담에서, 대표님이 던진 이 한 마디는 날 더욱 무력화하기에 충분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성장 방향과 대표님의 생각은 정확하게 불일치 했던가보다. 그제서야 그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호기심’이 머리를 쳐 든다. “도대체 이 세상엔 얼마나 다양한 생각이 있는거지?” 이 호기심이 또 다른 시작이 되길 기원하며, 마지막 퇴근길엔 여행 계획을 세워보기로 한다.

그러고보니 직장생활과 여행엔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다. 낯섦과 익숙함을 거듭 반복하며, 새로운 영역을 찾아나서야만 한다는 데에 말이다. 물론, 이 ‘낯섦’이란 개념엔 ‘불안’과 ‘공황’, ‘생소한 기분’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도 포함돼 있다. 여행지에서 마주하게 될 일을, 우리는 떠나기 전까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가치가 있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낯설고 두려운 환경에서 오롯이 자신에게만 집중하다보면 내 마음의 소리가 더욱 선명해질 것이기 때문이다.